내가 이 곡을 처음 들은 것은, 아마도 초등학교 5학년인가였던 걸로 기억하고 있다. 북릿을 확인해 보면, 실제로 이 곡이 실린 앨범의 공개일이 1988년도이기도 하고.
당시 이 음악의 뮤직 비디오를 TV 에서 보고서 이 곡에 엄청나게 매료되었었는데, 앨범을 구할 만큼의 적극성을 가지지는 못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머리속에 강렬한 인상만을 남긴 채 과거의 저편으로 사라져 갔다.
이후 어딘가의 방송으로부터, 그 곡이 Enya 의 곡이었다는 것을 다시금 알게 되었고 더불어 제목을 어렴풋하게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뒤로 또 몇년이나 지나 1990년대 말, 망한 시디 가게에서 엔야의 앨범 2개를 접할 수 있었는데, 본래 베스트 앨범이란 물건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본인은 다른 앨범을 골랐다가, 이 곡을 만날 기회를 4년 이상 놓치고 말았다.
2003년, 즉 금년 초에 와서 어느 동호회에서 우연히 Enya 를 검색할 기회를 가졌고, 용케 제목을 반쯤 기억해 낸 나는 해당 곡의 MP3 버전을 다운로드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이후 미처 한달도 지나지 않아 나온 그녀의 베스트 앨범. 무려 15년만에 그 곡과 제대로 된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 그 때 내 나이 스물일곱. 엔야는 이미 서른 중반을 넘어서고 있던 때였다.
... 라고 장황하게 쓰긴 썼는데, 간단히 말하자면, 상당한 추억을 가진 곡이라는 것이다. 무려 15년 동안 이 곡은 단 2번밖에 듣지 못했으니.
본인은 왜 그렇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취향상 보컬곡은 거의 듣지 않고 주로 연주곡만을 듣는 편이다. 특히나 어렸을 때에는 더더욱 그런 편식이 심했고, 사실 거의 순수하게 연주곡으로만 구성되었던 당시의 게임음악에 빠지는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런 나에게 있어서 목소리를 악기처럼 쓰는 "엔야" 의 이미지는 강렬할 수 밖에 없었다.
현재도 좋아하는 보컬곡들은 대부분 목소리를 악기에 가까운 느낌으로 사용하는 곡들이다. 즉, 반주가 목소리의 들러리 정도로 서는 곡들보다는, 뒤에 깔리는 악기들이 목소리와 거의 대등한 위치에 서서 연주해 내는 것을 훨씬 좋아한다. 때문에 로도스도 전기 앨범에서도 다른곡 다 제쳐놓고 Odissey 라는 보컬곡을 제일 좋아했으며, 칸노 요코씨의 앨범 중 가장 좋아하는 마크로스 플러스를 접했을 때는 말 그대로 "꺄아" 수준이었다.
잠시 이야기가 샜는데, 아무튼 그러한 본인의 취향에, 제작자의 의도마저 목소리를 철저히 악기로 활용하는 모습은 놀라울 정도로 부합할 수 밖에 없었고, 그리하여 이 곡은 Book of Days 와 함께 본인의 베스트 10 명곡 중 하나에 들어가게 되었다.
요즘 엔야의 곡은 본인의 취향과는 많이 달라져서 듣기가 좀 애매해진 느낌이다. 그래서 베스트 앨범도 수십 바퀴 돌린 현재에 와서는 뒷 부분의 곡들은 대부분 배제시킨 채, 초기의 4곡들만 뱅뱅 돌리곤 하는데, 아무래도 과거의 기억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