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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기기/만화,애니메이션

브래드할리의 마차

by 썰렁황제 2009. 12. 27.
** 이 작품은 19세 미만 구독불가 작품입니다.
** 2016.06.14 수정. 에로고어 -> 에로그로로 수정합니다. 댓글에 조언해 주신 분이 있었는데 너무 늦었군요. 이외 일부 내용도 수정했습니다.




  사무라 히로아키(沙村広明) 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 중 하나다. 그것도 다른 작가들과는 달리, 1)에로그로 적 연출에서 아주 노골적으로 어필하고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에로그로라는 측면에서는 오오구레 이토도 한 켠을 차지했었지만, 이 아저씨는 메이저 들어오면서 고어/그로계 표현조차 미적 형태로 다 바꿔버릴 만큼 지금은 딴동네 사람이 되었다.

  2)'비인간적인 사랑' 이라는 화보집을 보면 이러한 그의 성향이 잘 드러나 있다. 연필 소묘로 주로 이루어진 실사에 가까운 인체묘사 (얼굴은 아니지만) 를 바탕으로, 과장스런 연출 없이 (시츄에이션은 지극히 가상적이지만) 구성된 에로그로 그림들은 오히려 어지간한 CG 작가들의 "3)피떡이 된 고어물" 보다도 더욱 잔혹하면서도 에로틱하게 보였다.
 
   과장스런 연출을 억제하면서도 비현실적인 상활을 표현하는 이러한 그의 경향은 굳이 에로그로적 성향이 아니더라도 여러 작품 속에서 드러난다. 오히려 장편인 무한의 주인은 그런 경향이 덜하지만. 여러 단편에서, 심지어는 동인지에서조차 그런 모습이 드러나는데 이는 그의 선배인 4)토우메 케이의 영향을 짙게 받은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이 브래드할리의 마차는 그의 에로그로적 성향을 부분적으로 담고서 거기에 저런 작품의 경향을 합쳐 이루어진 단편으로 볼 수 있다. '비인간적인 사랑' 처럼 노골적으로 에로그로 요소가 담긴 그림들은 그다지 많지 않으나 (그랬으면 한국에 나오지도 못했겠지만) 작품 내 현실은 언어 없이 한 장의 그림, 또는 비교적 단편의 이야기 흐름으로 끝나는 '비인간적인 사랑' 이상으로 잔혹하다. 브래드할리의 마차에 태워져 '제물' 이 되는 소녀들의 현실은 만화에 묘사된 몇 가지 장면으로 연상하더라도 어지간한 윤간 동인지보다 훨씬 더 처절하니까. 아마 출판 간행물의 심의 한계 (일본도 마냥 허용하는 것은 아니니) 와 의도적 내용 절제 양쪽을 모두 노린 듯 싶다.

  이 작품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무미건조한 시선에 대한 접근 방식이다. 1.14 제도를 만든 브래드할리라든가, 감옥의 간수들에게서 조금씩 비추어지는 '인간적' 인 면모는, 무미건조한 시선에 힘입어, 그들의 인간적 면모가 아니라 인간성이라는 데에 기대어 자신들의 죄악에 대해 조금이나마 면죄부를 얻으려 하는 행동으로 비추어지게 만든다. 즉 이 작품에서 나타나는 무미건조한 시선이라는 것은 "독자들에 대한 해석의 자유" 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에서 나타나는 하나의 측면을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들게 하는 하나의 잣대 역할을 한다. 조금 바꿔 말한다면 무미건조한 시선은 여러 가지 해석이 합쳐져 만들어진 하나의 일관된 방향벡터인 셈이다. 조금 전에 비추어졌던 인간적 면모의 한 조각을 예로 들면, 건너편에 인간성이라는 것을 바탕으로 하는 양심에 대한 변명을 포함하고, 거기에서 다시 인간의 냐악한 측면으로 이전되어 간다.

  결론을 내면, 작품의 겉모습은 비인도적이라고 할 수 있는 내용으로 덮여 있지만, 그 이면을 뒤져보면 인간의 씁쓸한 측면을 그대로 담고 있는 꽤나 서글픈 작품이다.
 
  사무라 히로아키의 에로그로적 측면을 보고 싶다면 별로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잘해봐야 무한의 주인 정도니까.


주:
1) http://en.wikipedia.org/wiki/Ero_guro. NaNaShi 님 댓글 참고. 링크와는 별도로 설명하면, 에로 + 그로테스크, 즉 성적 요소에 그로테스크 요소를 조합한 것. 사무라 히로아키는 그로테스크 영역 중 고어 쪽에 많이 치중되어 있다.

2) 2006년쯤엔가 냈던 사무라 히로아키의 잔혹계열 화보집. 만화가 후배의 권유로 그전까지 그려뒀던 그림을 모아서 관련 전시회에 내면서 화보집을 냈다던가. 자세한 건 위키피디아에 있으니 찾아보시면 될 듯. 일어 명칭은 "人でなしの恋" - ISBN 487076654X

3) 상업지에서 말 그대로 피의 떡을 만드는 가장 잘 알려진 작가로는 "우지가 와이타(氏賀Y太)" 가 있다. 공교롭게도 이 작가가 막판에 그렸던 '진 현대엽기전' 과 같은 경우 여기서 언급하는 '브래드할리의 마차' 와 명맥상 유사한 바가 있다. 다만 그 사실을 언급하는 데에 있어, '시간상으로 너무 인접한 현실의 사건' 을 다루었기 때문에 굉장히 지탄을 받았고 그 때문인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최근에는 그로계 만화를 안그린다는 소문이 있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이 사람 홈페이지는 인터넷 에로그로/고어 CG 계의 허브 역할을 했었다.

4) "양의 노래", "예스터데이를 노래하며" 등으로 알려진 여성 작가. 사무라 히로아키의 대학 만화연구부 시절 선배로, 연필 소묘를 통한 표현법은 그녀가 전수해 준 거라고 한다. 하지만 두 사람의 작품 성향을 비교해 볼 때 전해준 것은 그 기법 뿐만은 아닌 듯 하다. 수식 없는 무미건조함으로 스토리를 서술하는 방식은 둘 다 상당히 유사하다. 토우메 케이쪽이 좀 더 감상적이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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