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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rnal Dream - 0. 꿈의 반대편에서 - 밀리어 홀리워터 편 - 1

by 썰렁황제 2005. 9. 25.

Eternal Dream - 0. 꿈의 반대편에서 - 밀리어 홀리워터 편 - 1

  태양계 최대의 공업지역인 달의 궤도에 존재하는 콜로니들은 대부분 초창기에 건설된 것들로서, 몇몇 콜로니들은 수명이 다해 폐쇄 상태에 놓여 있었다. 태양계 제 3의 신디케이트로 불리우는 아만 스페이스테크놀로지 사는 이러한 폐기된 콜로니들을 이용하여, 항성간 여행선 제작을 위한 기지를 완성하였고, 근 20년간 다양한 형태의 항성간 여행선을 제작해 왔다.
  10년 전, 항성간 여행선 제작 위원회의 일원으로 참여하게 된 밀리어 홀리워터는 최종 점검에 들어가기 시작한 항성간 여행선들의 점검을 위하여 지구의 유라시아 대학 연합 연구소로부터 이곳 달 궤도 콜로니군까지 오게 되었다. 그녀가 관련되어 있는 부분은 이번에 채용된 신소재 부분과 새로 만들어진 핵 엔진의 극히 일부 이론 뿐인 탓에 이번 최종 점검에서는 그다지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지는 않았고, 덕분에 비교적 편한 마음으로 오기는 했지만 연구소 사람들이 말하던 것처럼 놀러 가는 기분으로 간다는 것은 어떻게 생각해도 무리였다.

  콜로니 이상의 크기를 가진 인공 거주지역은 대부분 지구에 가까운 수준의 중력을 여러가지 방법으로 지원하고 있었지만, 이에 미치지 못하는 크기를 가진 거주지역이나 우주 왕복선과 같은 교통수단에서는 아직 중력을 지원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곳에서 펄럭이는 스커트를 입는다거나 긴 머리카락을 묶지 않고 그대로 둘 경우에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었다. 밀리어는 실험실에서 항상 바지 차림이었으므로 옷이야 별로 문제될 것은 없었지만, 항상 풀어두고 있었던 긴 머리카락을 흩날리지 않게 모아 묶는 것 만큼은 잘 적응이 되지 않았다. 뒤로 틀어올린 머리를 고정시킨 머리핀을 만지작거리며 그녀는 우주 정류장으로부터 나와 콜로니 내부로 향하는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콜로니 내부 회의실로 진입하기 위한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우주정류장에서 대기하고 있던 그녀는 마침 이쪽 방향으로 오고 있는,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반백의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잘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오랜만이군요. 홀리워터 양"
  "안녕하세요. 리젤 박사님."

  그녀가 제작위원회에서 그를 처음 보았을 때에는 연구에 몰두하던 한창 때의 박사였지만, 지금은 군데군데 나타난 흰 머리카락이 눈에 확 들어올 정도로 나이를 먹어가고 있었다. 그만큼 세월이 흘렀다는 것을 말해 주는 듯.

  "홀리워터 양도 이젠 더 이상 나이 때문에 문제가 될 일은 없겠군요. 세월이 참 많이 지났어요."

  그가 짓는 미소와 함께 얼굴에는 밀리어가 이전에 보지 못했던 잔주름이 섞여 있었다.

  "예. 마지막으로 뵌 이후로도 4년이 넘었으니…"

  무언가 더 이야기하려고 할 즈음, 요란한 기계음이 울려 퍼지면서 엘리베이터의 출입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들어가지요."

  리젤 박사가 밀리어에게 먼저 들어가도록 손짓했다.


  그녀가 최초로 이 곳에 왔을 때와 비교해도 엘리베이터의 내부는 별로 변한 것이 없었다. 반면에 엘리베이터 바깥에 비치는 광경은 마지막으로 들렀던 4년 전의 그것과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FS-1231F 가, 항간에 알려진 이름으로 Eternity 라고 불리는 항성간 여행선이 거의 완성된 모습으로 그녀의 눈에 들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 모습을 보자 밀리어의 입에서는 잠시 한숨이 새어 나왔다. Eternity 에 대한 감탄과 세월의 무상함에 대한 아쉬움이 섞인 감정을 안고서.

  "그 동안 진행하고 있던 연구는 잘 되고 있나요?"

  창밖의 이터니티 건조 현장에 시선을 고정시키며 상념에 빠져 있던 밀리어는 리젤 박사의 한 마디에 현실로 되돌아왔다.

  "얼마 진행하지는 못했어요. 애당초 2년만으로 끝날 일은 아니었으니까. 그 다음은 정신없이 연구소 이전 준비에만 몰두하고 있었고… 이번 최종 점검이 끝나면 바로 Eternity 호로 옮길 계획이에요."
  "그렇군요"

  그녀는 조금 더 말을 이었다.

  "이번에 제가 온 건, 점검 건보다는 오히려 사전답사가 더 가까워요. 어쨌든 연구원들이 평생 동안 머물러 있어야 할 곳이니까. 미리 봐 두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해서… 그렇다고 다른 곳으로 갈 수도 없는 것이기는 하지만요."

  그녀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안경을 고쳐 잡았다. 씁쓸한 감정이 지나쳐 갈 때 취하는 버릇이라고 해야 할까.
  오래 전부터 한 나라의 영역을 뛰어넘은 신디케이트의 힘은 막대한 것이어서, 특히 국가라는 존재를 유지하기 어려운, 항성간 여행선으로 분리되는 현 이민 계획이 시작된 이후로는 엘리트 인재들을 자신의 구역으로 끌어들이기 위하여 각 국가 및 연합 대학과 연구소들에게 지대한 압력을 가하고 있었다. 그녀가 소속된 유라시아 연합대학의 경우도, 그녀가 이곳과 계기를 갖게 만든 아만 그룹에 의하여 Eternity 에 거의 강제적으로 배속된 상황이었다.

  "음… 아이젠슈타인 박사는 별다른 말이 없었나요? 이번 건에 대해서…"

  갑작스레, 그리고 진지한 표정으로 그의 입에서  리하르트가 언급되자, 그녀는 약간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예…? 그...와는 최근 별로 연락을 해 보지는 않아서…"
  "그렇군요… 역시 그런 건가…"

  그녀는 7년전 리하르트와 라인리히 박사 간에 그녀 자신을 놓고서 감정적으로 미묘한 신경전을 벌였었던 과거를 잠시 떠올렸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이미 해결된 지난 일이고, 지금에 와서 그런 문제로 그들이 다시 감정싸움을 벌일 리는 없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저었다.

  "왜 그래요, 홀리워터 양?"

  그녀는 잠시 엉뚱한 생각을 한 자신이 부끄러워 얼굴을 붉혔다. 아니 어쩌면 당시의 일들이 오히려 자신의 마음 속에만 남아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인 것 같기도 했다.

  "아 아니에요. 잠시 연구소 일이 떠올라서."

  일단 대충 얼버무렸다. 잠시간의 침묵.

  "그런데 리하르트는 왜…"

  그녀가 그에 대해 되물을려고 했을 때, 그는 오른손으로 턱을 받치고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가벼운 일은 아닌 듯한 느낌이 들어 그녀는 입을 다물고서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바깥에서는 Eternity 호의 작업을 위해 부착시켰던 수많은 지지대와 작업기기들을 분리시키기 위한 작업이 한창이었다. 엘리베이터가 점차 중앙의 거주 구역으로 이동하면서 Eternity 호의 거주 블록을 지나쳐 가운데 위치한 항해 블록의 모습이 점차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 거대한 물건이 태양계를 떠날 때쯤이 되면 지구도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 아니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다시금 뭐 대충 때워. 과연 인류는 태양계를 벗어나 지구와 같은 행성을 다시 찾을 수 있을 것인지, 아니 과연 이 Eternity 호가 그러한 곳을 찾을 수 있을 것인지… 더 좁혀서, 자신의 인생이 끝나기 전에 과연 그곳을 볼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하자, 무언가 잡을 수 없는 듯한 것이 자신을 떠나가 버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선들이 제작되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그것은 까마득한 미래의 일이라고 생각을 했건만, 현실은 이미 눈앞에까지 다가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현재 태양계에 머무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이 그러리라. 왜 태양계에 극구 남아있으려는 사람들이 있는지를 이해하게 된 것도 근 1-2년 전부터 느끼게 된 그러한 감정 덕분이었다.

  시선을 바깥에 고정하고 있던 그녀의 오른쪽 어깨에 갑작스레 무게감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 보니, 어느 새 리젤 박사가 그녀의 앞까지 다가와 왼손을 얹고 있었다. 미처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그가 입을 열었다.

  "홀리워터 양. 무슨 일이 있더라도 마음을 강하게 먹어요. 아직 당신에게는 긴 시간이, 그리고 많은 선택이 남아있으니까."

  그녀가 정신을 차리고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되물으려고 하는 순간,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고, 그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자세를 돌려 먼저 바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말에 불길한 기운을 느낀 그녀는 그를 쫓아가 다시 물어볼까 했지만, 그가 등을 보이고 서둘러 나가는 모습을 보고서는 다시 물어 본다고 하더라도 더 이상의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복잡한 심경이 교차한 채로 그녀는 리젤 박사의 뒤를 따라 회의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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