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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기/사진

나는 왜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까?

by 썰렁황제 2005. 5.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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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히 말하면 저는 그림을 그린다는 것 자체에 애정을 그다지 가지고 있는 편은 아닙니다. 사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계기도, 게임 기획에서 표현해야 하는 부분을 소화해 낼 수 있기 위해서였을 뿐이었고, 그런 목적을 가졌던 관계로 제가 갈 수 있는 그림상의 표현은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중3-고2 시절동안 컴퓨터를 거의 쓸 수 없게 되면서 누적된 불만이 수업시간에 낙서로 이어졌고, 아마도 그 시절이 그나마도 유일하게 그리기 위해서 그린 시절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 치고는 실력향상은 형편없었죠. 하지만 그림 자체에 미련을 그다지 가지고 있지는 않았기 때문에 주변에 잘 그리는 사람이 많아도 별로 자괴감이 들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대햑생이 되고, 같이 지내던 고등학교 동창들 중 낙서들을 같이 공유했던 친구들이 하나둘씩 떠나고, 단 한 명만이 남게 되었습니다. 그 남은 친구는 대학교 시절에도 왕성하게 그림을 그렸고, 전 가끔씩 그리는 정도였죠. 물론 그 친구가 저보다 훨씬 잘 그립니다. 그 친구가 한때 그림을 그리는 것에 대해 굉장한 심리적 압박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나우에서 활동하던 시절, 같은 연배들의 다른 사람들이 굉장한 실력을 가진 것을 보고 그랬었던 것인데요 (당시 그 실력을 가진 사람들이 현재 다들 현역으로 만화나 게임에서 그림으로 일하고 있기도 하구요) 그 때 제가 "그림을 그리면서 즐거우면 된 것이 아닐까." 라는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그 뒤 그 친구는 그리는 것에서 자유를 얻었고, 현재는 취미만으로 그리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실력이 사실 아깝더군요요... 요즘은 그리는 양이 줄어서 예전만 하지 못한 걸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사실 좋은 이야기이긴 하지요. "즐거우면 된 것이 아닐까..." 라는 것은... 하지만, 그 이야기는 제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위에서 말씀드렸다 시피, 저는 그리는 것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그것을 깨닫게 된건 한 3년전쯤, 위에서 찍은 타블렛을 사고 나서부터였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당시 저는 그 친구가 인튜오스 1 9x12 를 구매한 후 남게 된 아트패드 2 를 사용하던 중이었습니다만, 그것도 거의 2년째가 다 되어가는지라, 더 이상 신세를 질 수 없다고 생각하고, 다소 무리해서 위의 인튜오스 2 를 구매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원래 그림을 그리는 빈도가 적었던 데다 일도 바빠지기 시작해서 타블렛에는 먼지만 쌓여갔고, 조금 시간을 내서 그림을 그려보려 해도, 전혀 원하는 대로 나오지 않는데다, 인터넷의 다른 사람들이 그린 자작 CG 를 보면 자괴감만 들어서, 타블렛을 팔까말까하는 고민까지 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같이 그리던 친구는 한계 1발자국을 넘어서 저쪽으로 가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으니... 그 때, 제가 그 친구에게 "즐거우면 된 것이 아닐까..." 라는 이야기를 했던 것이 생각났고, 그 친구가 당시 가지고 있던 고민이 어떤 것인지를 알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저 자신을 보고 "그리는 것이 즐거운" 일이라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그림을 그리면서 얻은 즐거움은, 제 머리속에 있는 이야기나 기획을 표현해 낼 수 있다는 것이지, 그림 그리는 것 자체가 아니었으니까요...

  결국 다시 뭔가를 그려보겠다고 결심을 하게 된 것은, 저 스스로 게임을 만들어보자는 결심이 서게 되면서였습니다. 저 자신은 바로 그런 계기를 통해서 즐거움을 얻었다는 것을 알았고, 그 때문에 아예 "이야기의 부속이 되는" 그림을 그리는 즐거움으로 방향을 잡게 된 것이죠. 그리고 그것이 지금까지 온 것입니다. 지금 올라오는 그림들도 대부분 그런 것들의 산물이구요...

  그런 이유로, 제가 그리는 그림들은 표현력에 있어서 굉장한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같은 동아리의 모씨가 그리는, 한 장면에 많은 주제를 담는 그림도 무리고, 같이 그림을 그리던 친구가 보여주는, 한 장면에서 나타나는 스토리텔링같은 건 전혀 재주가 없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고작 디자인하는 게임상에 나오는 캐릭터들의 스탠딩이나 설정그림, 로고같은 것들 정도이죠... 그나마 인물에 한정되어 있는 것이 고작이구요... 하지만 저는 그림 자체보다는 그런 부분에서 재미를 얻고 있기 때문에, 그런 한게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나름대로 만족을 하고 있습니다. 더 잘 그리면 물론 더욱 좋겠지만요...

 P.S 부끄럽게도 이 실력으로 이전에 그래픽 파트 (3D) 를 맡았던 적이 있습니다 (Eternal Dream 은 아닙니다) 당시 거의 하루종일 캐릭터 모델링이랑 스케치만 죽어라고 해댔었는데, 도저히 일로서는 못하겠더군요 ^.^;; 아이디어도 별로 안떠오르고... 결국 그쪽 일은 적성에 안 맞았던 모양입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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